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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년 11월27일’ 페퍼저축은행이 정관장과의 천적 관계를 처음 청산한 날로 기억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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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망꽁이 작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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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자 프로배구 ‘제7구단’으로 창단해 2021~2022시즌부터 V리그에 참가한 페퍼저축은행은 지난 2023~2024시즌까지, 총 세 시즌 동안 13승90패로 ‘승점 자판기’ 신세를 면치못했다. 나머지 6개 ‘언니구단’들이 모두 천적이라고 할 수 있겠지만, 그 중에서도 가장 오랜 기간 군림해온 큰 천적은 정관장이었다. 시쳇말로 페퍼저축은행의 ‘담당일진’이라고 불러될 정도로 정관장은 일방적인 천적이었다. 
 
창단 첫 시즌인 2021~2022시즌엔 IBK기업은행에 2승3패, 흥국생명에 1승패를 거뒀고, 두 번째 시즌인 2022~2023시즌엔 도로공사를 상대로 2승4패, 현대건설 1승5패, IBK기업은행 1승5패 GS칼텍스 1승5패 등 정관장을 제외한 5개팀은 두 번째 시즌까지 한 번이라도 이겨봤다.
 
길고도 길었던 페퍼저축은행의 정관장전 연패는 2023~2024시즌 막바지에 처음 깨졌다. 창단 후 2023~2024시즌 5라운드까지 정관장을 상대로 무려 17전 17패를 당했던 페퍼저축은행은 지난 3월13일 열린 6라운드 맞대결에서 세트 스코어 3-1로 승리했다. 다만, 이 승리로 천적관계가 깨졌다고 말하기는 애매하다. 정관장이 3월7일 GS칼텍스전 3-0 승리를 통해 준플레이오프 가능성을 삭제시키고, 플레이오프 직행을 확정지었기 때문이다. 주전들의 부상 방지 및 체력 안배 차원에서 정관장 고희진 감독은 페퍼저축은행과의 시즌 마지막 대결엔 메가, 지아 등 외국인 선수는 물론 주전급 선수를 전원을 빼고 백업 선수들로 경기를 치렀다.
  

이러한 스토리를 감안하면, 페퍼저축은행이 진정한 의미에서 정관장과의 천적관계를 청산한 날짜는 2024년 11월27일로 기억될 것이다. 페퍼저축은행과 정관장이 현 시점 가동할 수 있는 베스트 멤버를 총동원해 맞붙어 처음 이긴 날이기 때문이다. 페퍼저축은행은 27일 대전 충무체육관에서 열린 2024~2025 V리그 2라운드 정관장과의 원정경기에서 세트 스코어 3-1로 승리했다.
 
시즌 개막전이었던 지난달 22일 한국도로공사전에서 3-0 승리를 거두며 산뜻한 출발을 보이는 듯 했으나 이후 트라이아웃 1순위 외국인 선수인 자비치의 퇴출 등이 겹치며 7연패의 늪에 빠졌던 페퍼저축은행은 정확히 한달 만인 지난 22일 시즌 첫 승의 제물이었던 한국도로공사를 상대로 3-2로 승리하며 연패 사슬을 끊어낸 바 있다. 이날 정관장전 승리의 의미는 ‘시즌 첫 연승’이었다. 승점 3을 오롯이 챙긴 페퍼저축은행은 승점 9(3승7패)를 쌓으며 5위로 한 단계 점프했다. 4위 정관장(승점 12, 4승6패)도 이제 추격 가시권에 들어왔다.

승리의 일등공신은 단연 아웃사이드 히터 이한비였다. 이한비는 이날 팀 공격의 22.82%를 책임졌다. 32.21%의 테일러와 31.54%의 박정아에 이어 공격 비중은 세 번째였지만, 무려 55.88%의 공격 성공률을 기록하며 팀 내 최다인 20점을 몰아쳤다.
 
이한비의 기록을 세세히 들여다보면 진가가 더욱 드러난다. 테일러는 190cm로 신장은 좋지만, 파워가 그리 돋보이지 않아 외국인 선수의 제1의 임무인 하이볼 상황에서의 공격, 즉 오픈에는 약점이 있다. 이날도 퀵오픈은 45.45%(10/22)의 성공률을 보였으나 오픈은 25%(5/20)에 그쳤다.
 
이날 페퍼저축은행의 리시브 효율은 20%에 그쳤다. 그만큼 오픈 공격 상황이 많이 생겼다는 의미다. 테일러가 해소시켜주지 못하는 오픈 공격은 토종 에이스인 박정아가 해결해줘야 하지만, 박정아도 27.27%(6/22)로 테일러보다 아주 약간 더 나은 수준이었다. 이날 박정아는 13점을 올리긴 했지만, 전체 공격 성공률도 27.66%(13/47)로 시즌 평균을 한참 밑돌았다.
  

두 주공격수의 오픈 공격 부진을 완벽히 메워준 게 바로 이한비였다. 이한비의 이날 오픈 공격 성공률은 무려 58.82%(10/17). 상대 블로커의 견제를 훨씬 덜 받는 퀵오픈(9/17)보다 오픈 성공률이 더 좋았다. 그야말로 ‘이한비의 날’이었던 셈이다. 신장은 178cm로 190cm의 테일러나 187cm의 박정아에 비해 훨씬 작지만, 페퍼저축은행 내에서 가장 파워가 좋은 이한비는 힘을 앞세워 상대 블로킹을 이용해 공을 밀어때렸고, 이한비가 때린 공은 족족 상대 수비가 도저히 걷어낼 수 없는 곳으로 날아가거나 코트 아래로 떨어졌다. 4세트 24-20에서 승리를 결정짓는 한 방도 이한비의 오픈 공격이었다. 이날 페퍼저축은행은 이한비가 전위에 올라왔을 때가 경기력이 가장 안정적이었다.
 
아시아쿼터 미들 블로커 장위는 이날 블로킹 2개, 서브득점 2개를 기록하긴 했지만, 공격에서는 35.71%의 성공률에 그치며 속공 4개만 성공시켰다. 다만 순도는 높았다. 결정적인 장면이 바로 승부의 분수령이었던 3세트 막판이었다.
  

3세트 막판 23-19로 앞서며 무난하게 3세트를 가져가는 듯 했던 페퍼저축은행은 이후 정호영의 속공에 부키리치에게 연속 퀵오픈을 허용하며 23-22, 1점차로 쫓겼다. 테일러의 퀵오픈으로 24-22를 만들며 한 숨돌린 뒤 다음 랠리에서 수비로 걷어올린 공을 박정아가 오픈으로 연결했지만 아웃되면서 24-23까지 다시 쫓겼다. 슬금슬금 ‘정관장 포비아’ 증세가 올라오려던 시점, 상대 정호영의 서브를 이한비가 세터 박사랑에게 정확한 리시브로 연결했고, 박사랑은 한치의 고민도 없이 장위에게 속공을 올렸다. 장위는 전광석화처럼 뛰어올라 백A를 성공시키며 3세트를 가져왔다. 이 속공 한 방으로 장위는 ‘밥값’을 다 했다.
 
시즌 첫 연승을 달린 페퍼저축은행은 이제 본격적으로 중위권 싸움에 뛰어들 준비를 마쳤다. 무엇보다 테일러의 반등이 반갑다. 자비치 대신 V리그에 입성한 테일러는 앞선 4경기에서 기대 이하의 모습을 보였다. 3-2로 승리한 지난 22일 한국도로공사전에선 5세트에 아예 코트에 서지 못할 정도였다. 그러나 이날 공격성공률은 다소 떨어졌지만, 최다인 19점을 올렸고 블로킹 4개와 유효 블로킹 9개를 만들어내며 전위에서만큼은 확실한 존재감을 보여줬다.
  

페퍼저축은행의 다음 상대는 27일 기준 9전 전승을 달리며 독주 태세를 갖춘 흥국생명. 과연 시즌 첫 연승으로 기세를 탄 페퍼저축은행이 창단 첫 3연승의 제물로 흥국생명을 만들 수 있을까. 문득 떠오르는 기억 하나. 지난 시즌 흥국생명의 정규리그 우승을 저지한 것은 6라운드 맞대결에서 3-1 승리를 거둔 페퍼저축은행이었다는 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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