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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3년 전 고시엔 결승 '한국 이름' 출전→현재는 '연 매출 14조' 대기업 사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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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3년 전 고시엔 결승 '한국 이름' 출전→현재는 '연 매출 14조' 대기업 사장



한유 마루한 대표이사 사장. 그는 1981년 교토상업고 소속으로 고시엔 결승전에 출전했다. /사진=마루한 홈페이지 캡처지난 23일 한국계 민족학교 교토 국제고가 제106회 여름철 고시엔 대회에서 우승을 차지해 화제가 되고 있다. 특히 이 대회에서 여섯 차례나 울려 퍼진 교토 국제고의 한국어 교가는 재일교포 사회와 한국에서 큰 반향을 불러 일으켰다.

교토 국제고 우승 멤버 중에는 한국인 선수도 있었다. 결승전에 1번타자 겸 좌익수로 출전해 연장 10회초 밀어내기 볼넷으로 교토 국제고의 첫 득점에 기여한 가네모토 유고(金本祐伍·3학년)가 주인공이다. 교토 출신 가네모토는 중학교 졸업 후 다른 지역 고등학교로부터 스카우트 제의를 받았지만 고향 팀 교토 국제고에 입학했다.

흥미롭게도 그는 고교 입학 전에는 자신이 한국인이라는 사실을 몰랐다. 25일 일본 스포츠 매체 '넘버'는 "가네모토가 고등학교 시절 처음으로 자신이 한국계라는 것을 알았다"고 전했다. 11년째 교토 국제고 야구부의 스카우트로 일하고 있는 이와부치 유타도 "교토 국제고 선수 중 (가네모토와 같이) 고등학교 입학 후나 여권 발급 시기에 한국 국적이라는 걸 알게 되는 선수가 꽤 많다"고 언급했다.

교토 국제고 선수들이 지난 23일 고시엔 결승전에서 승리한 후 환호하고 있다. /AFPBBNews=뉴스1재일 한국인 선수들의 여름철 고시엔 출전의 역사는 깊다. 그 가운데에서도 지금까지 가장 많이 회자되는 대회는 1981년 고시엔이다. 이 대회에서 우승을 차지한 호도쿠 가쿠엔(학원)의 에이스 투수는 한국계 가네무라 요시아키(61·한국명 김의명)였다. 그는 투수로도 주목받았지만 타자로서도 대활약을 했다. 6경기에서 22타수 12안타 4타점 2홈런을 기록해 1981년 고시엔의 최고 스타가 됐다.

하지만 이 대회가 재일교포 사회를 감동시켰던 이유는 또 있었다. 호도쿠 가쿠엔과 결승전에서 맞붙었던 교토상업고에는 일본 이름이 아닌 한국 이름을 쓰는 선수가 두 명(한유, 정소상)이나 출전했기 때문이다. 정소상은 1번타자 중견수, 한유는 5번타자 좌익수로 선발 출장했다.

재일 한국인들이 한국 이름을 쓰는 것은 드문 일이었다. 이런 이유로 한국계 선수 가네무라는 대회 개회식 리허설에서 만난 교토상고의 두 선수에게 "너희 한국 이름으로 출전하는 거야? 정말 대단하다"고 말했다고 한다.

1981년 호도쿠 가쿠엔-교토상업고의 고시엔 결승전 기록. 교토상업고 1, 5번타자로 출전한 정소상과 한유(빨간 네모)의 한국 이름이 눈에 띈다. /사진=일본 아사히신문 캡처교토상고의 좌익수로 활약했던 한유(61·韓裕)는 감독으로부터 "한국 이름으로 출전하는 게 괜찮을까"라는 질문을 받았다. 이전까지 고시엔에 재일 한국인 선수가 나선 경우는 많았지만 이들은 모두 일본 이름으로 선수 등록을 했기 때문이다.

한유는 지난 2017년 일본 스포츠 매체 '히가시 스포웹'과 인터뷰를 통해 그가 한국 이름으로 대회에 출전한 사연을 소개했다. 그는 "나도 '니시하라(西原)'라는 일본 이름이 있었지만 사용한 적은 거의 없었다. 그래서 내 한국 이름으로 대회에 나가겠다는 뜻을 감독에게 전했다"고 말했다.

43년 전 한국 이름으로 고시엔에 출전한 한유에 대해 재일 한국인들은 수많은 편지를 보내왔다. 당시 재일 한국인들은 "당신의 결정에 큰 용기를 받았다. 내 아이도 한국 이름으로 고시엔에 출전시키고 싶다"라는 내용의 격려 편지를 한유에게 보내왔다. 그가 한국인이라는 강한 의식을 갖게 된 것도 여기에서부터 출발했다.

한유는 훗날 일본 귀화 신청을 할 때도 한국 이름을 고수해 어려움을 겪어야 했다. 당시 일본 법무국에서는 "왜 한국 이름으로 귀화 신청을 하는가"라고 따져 물었다. 하지만 그는 "일본에서 살아가기 위해 국적을 얻는 것이지 한국인이라는 사실을 숨기기 위해 귀화하는 것은 아니다"라고 뜻을 굽히지 않았다. 결국 그는 한국 이름으로 귀화 신청을 했다.

한창우 마루한 대표이사 회장. /사진=마루한 홈페이지 캡처한유의 아버지는 파친코 기업으로 유명한 마루한의 창업주 한창우(93) 회장이다. 그는 명문 호세이 대학 경제학부를 졸업했지만 2차 세계대전 후 한국인에 대한 차별 때문에 당시 매형이 운영하던 파친코 가게에서 일을 도와야 했다. 이후 그는 이 가게를 인수해 볼링장과 레스토랑 사업 등으로 사업을 확장하며 마루한을 일본 굴지의 기업으로 키웠다.

한유는 아버지의 가업을 이어 받아 2008년 마루한의 대표이사가 됐다. 그는 야구 선수로 활약하며 경험한 희생과 봉사 정신을 바탕으로 고객에 대한 서비스를 혁신해 마루한을 연 매출 14조 원(2020년 기준) 규모의 대기업으로 탈바꿈시키는 데 큰 역할을 했다. '히가시 스포웹'에 따르면 한유는 2017년 인터뷰 당시 일본 독립리그 야구 팀을 후원하고 있으며 기회가 주어진다면 프로야구 구단을 운영하고자 하는 포부를 드러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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