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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허행운의 굿럭항저우] 미안함은 받지 않겠습니다, 당신들이 보여준 열정만 받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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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허행운의 굿럭항저우] 미안함은 받지 않겠습니다, 당신들이 보여준 열정만 받겠습니다


럭비 대표팀이 은메달을 딴 후, 서로를 격려하고 있다. 사진=허행운 기자
 
박수받아 마땅한 멋진 싸움이었다.
 
한국 럭비는 1998년 방콕, 2002년 부산 아시안게임에서 연속 정상에 섰다. 2006년 도하 대회에서 마지막 결승을 맛보고 슬슬 정상에서 내려왔다. 국제대회 금빛 소식과 함께 ‘비인지 종목’ 탈피를 꿈꾸던 한국 럭비는 다시 잠잠해졌다.
 
2023년 9월의 항저우. 17년의 세월을 건너 다시 결승까지 힘차게 약진했다. 대진운이 따랐다지만, 준비된 자가 기회를 잡는 법이다. 내친김에 21년 만의 ‘금빛 트라이’까지 넘봤지만 아쉽게 홍콩의 벽을 넘지 못했다.
 
무기력한 패배가 아니었다. 모두가 뜻을 모은 일방적인 승부 예측을 보란 듯이 깨뜨렸다. 홍콩이 영국계 선수들을 대거 투입하며 예상된 피지컬 열세를 투지와 팀워크로 버텼다. 최종 결과는 7-14 패배지만, 사실상 1-2다. 트라이로 얻는 5점과 추가 컨버전 킥 2점을 더한 7점이 한 턴마다 왔다 갔다 한 셈이기 때문이다.
 
믹스트존을 지나며 아쉬워하는 선수들과 울먹이는 한건규(가운데)의 모습. 사진=허행운 기자
 
졌지만 ‘참’ 잘 싸웠다. 하지만 믹스트존을 지나는 선수들의 표정은 그렇지 못했다. 허망함에서 비롯된 눈물인지 혹은 땀인지 모를 것들로 얼굴이 범벅이 돼 있었다. 대표팀 ‘둘째 형’ 한건규(36)도 소감을 묻자 한동안 목이 메어 답하지 못했다. 그러고는 이내 “응원해 준 팬들에게 미안하다”고 울먹였다.
 
항저우 아시안게임 선수단장이자 대한럭비협회 회장인 최윤 단장도 마찬가지였다. 경기를 마치고 취재진 앞에 선 그는 “죄송합니다. 감사합니다”를 반복했다.
 
문득 ‘대체 무엇이 죄송한가?’라는 근원적인 질문이 들었다. ‘금메달을 따지 못해서’라는 모두가 아는 이유겠지만, 이제 더는 그러지 않아도 되는 세상이다. 무엇보다 각자의 위치에서 발산한 열정이 고스란히 전달됐기 때문에 더더욱 그러지 않아도 된다.
 
최윤 선수단장이 관중석에서 벌떡 일어나 경기를 지켜보고 있다. 사진=허행운 기자
럭비 결승전이 끝난 후, 최윤 선수단장이 선수들을 안아주고 있다. 사진=뉴시스
 
수비의 대들보인 한건규는 준결승까지 든든하게 상대를 막아 세웠다. 동료 이진규와 함께 빗장을 걸어 총 3개의 트라이만 내줬다. 다만 준결승 중국전에서 닥친 부상으로 결승에 뛰지 못했다. 벤치에서 경기를 지켜본 그는 동생들에게 누구보다 뜨거운 격려를 보냈다.
 
최윤 단장은 말할 것도 없다. 재일교포 3세인 최 단장은 일본에서 보낸 학창 시절, 럭비부로 활동했던 선수 출신이다. 관중석에 앉아있던 그의 모습에서 ‘럭비인’ 최윤의 모습을 볼 수 있었다. 태극전사들이 공을 들고 골라인을 향해 뛰어갈 때면, 벌떡 일어나 질주의 순간을 함께 했다. 선수들이 기뻐하거나 아쉬워할 때마다 가감 없이 그 감정을 공유했다. ‘선수단장’으로서의 권위는 내려놓고 진심으로 승부의 순간을 즐기는 모습이 참 인상적이었다.
 
그 모든 열정이 모여 기자의 마음을 움직였다. 다시 한 번 ‘메달 색’에 대한 집착을 내려놓자고 다짐했다. ‘금’메달이 주는 단어의 묵직함이 여전히 기자로서의 본능을 자극하긴 하지만, 그때마다 심금을 울렸던 최 단장의 멘트를 다시 상기시킨다.
 
“선수들의 땀방울이 메달 색으로만 정의되지 않길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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