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무열 “집에 빨간딱지 붙어..보좌관 父, 식물인간→암투병” 고백 (‘유퀴즈’)[종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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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무열 “집에 빨간딱지 붙어..보좌관 父, 식물인간→암투병” 고백
(‘유퀴즈’)[종합]
[OSEN=박하영 기자] ‘유퀴즈’ 김무열이 눈물의 가족사를 공개했다.
29일 방송된 tvN 예능 ‘유 퀴즈 온더 블럭’에는 ‘영화보다 영화 같은’ 특집으로 영화 ‘범죄도시4’로 천만 배우에 등극한 김무열이 출연한 가운데 힘들었던 과거를 떠올렸다.
이날 김무열은 “'범죄도시4' 천만 돌파를 관계자들보다 어머니가 문자를 주셔서 먼저 알게됐다. ‘천만 배우 된 거 축하한다’고 왔다”라며 단검 액션에 대해 “제가 20대 때 ‘칼리 아르니스’라는 필리핀 검술이 있다. 그게 단검을 쓰기도 하다. 그래서 그 운동을 배운 경험이 있어서 단검과 친숙했다. 액션 찍느라 힘들지 않았냐고들 하시는데 동석이 형님도 워낙 액션에 일가견 있고, 그 형이 배우가 복싱을 하는 게 아니라 복싱 선수가 배우를 하는 거다”라고 소감을 밝혀 눈길을 끌었다.
이어 “그럴 정도로 몸을 잘 쓰시는 선배님이셔서 주먹을 휘두르면서 쳤는데 컷!하고 사과를 드렸다. 마동석 형이 ’왜’ 하시더라. 근데 내 손은 엄청 떨렸었다”라고 마동석과의 일화를 덧붙였다.
‘범죄도시4’ 천만 기념 마동석과 전화 통화도 했다. 유재석은 “천만 축하드린다. 김무열 씨가 ‘유퀴즈’ 나왔다”고 하자 마동석은 “다들 성공했다”라며 “김무열 배우가 ‘유퀴즈’ 나오니까 되게 머리를 예쁘게 하고 나왔다”라고 흐뭇해했다.
특히 천만 돌파 소감에 묻자 마동석은 “아이고 우리 김무열 배우 덕으로 영광스럽게 천만을”이라며 “이 모든 것이 관객분들의 힘이다. 이렇게 찾아주셔서 진심으로 감사하다. 1, 2, 3, 4 편은 액션, 코믹활극이라면 5~8은 액션 스릴러로 진한 편으로 보여주겠다”라고 예고해 기대를 모았다. 그러면서 ‘유퀴즈’ 나와달라고 즉석에서 섭외하는 유재석에 “이렇게 자주 통화할 거면 차라리 체육관으로 오세요”라고 말해 웃음을 자아냈다.
그런가 하면, 김무열은 작품에 맞게 체중을 증량했던 바. 그는 영화 ‘악인전’에서는 15kg 증량을, 영화 ‘대외비’에서는 12kg 증량을 했으며 이번 ‘범죄도시4’에서는 10kg 증량을 했다고 밝혔다.
이에 대해 김무열은 “체중 증량이 힘들었다. 일주일 동안 치킨을 먹을 수 있을 정도로 닭 요리를 좋아하는데 먹느라 냄새만 맡아도 힘들기도 했다”라며 “음식물 쓰레기를 버리는 김에 쉐도우 복싱을 30분 동안 하기도 했다. 뒤를 돌아보면 주민들을 마주해서 몰입이 깨질 수 있다. 다들 저 인 줄 안다”라며 증량 비결을 공개해 눈길을 끌었다.
한편, 김무열은 육상을 하다가 연기의 길로 들어선 계기를 밝혔다. 주력 종목 200m, 높이뛰기로 육상 선수를 했던 그는 “중학교 시절 방과 후 활동했던 선배가 안양예고 다니면 머리를 기를 수 있다는 말에 어머니한테 안양예고 가고 싶다고 말씀드렸더니 연기 학원을 보내주셨다. 당시 아버지는 제가 공부를 하고 다른 길을 가길 바라셨다. 그래서 아버지 몰래 연기 학원을 2년 정도 다녔다”고 회상했다.
당시 김무열 아버지는 서울대학교 정치학과를 나오시고, 국회의원 보좌관을 오래하셨던 만큼 되게 엄한 분이셨다고. 김무열은 “어렸을 때는 이제 공부를 하길 더 바라셨던 것 같다. 그러다니보니까 안양예고 가고 싶다고 연기를 배우는 걸 말씀 못 드렸다”라고 덧붙였다.
그러자 유재석은 “고등학교 입학 즈음 집안 사정이 어려워졌다던데”라고 물었다. 김무열은 “어머니께서 상가 분양 관련한 사기를 당하셨다. 여러 일이 겹치면서 가세가 많이 기울었다. 살던 집에 사람들이 들이닥쳐서 빨간 딱지 붙기도 했다. 광명에서 대학로까지 버스와 전철을 타야하는데 차비가 없어서 어머니께서 동네 다른 이웃들한테 돈을 빌리실 정도로 경제적으로 어려웠다”라고 털어놨다.
심지어 스무살 되던 무렵에는 아버지가 사고로 쓰러지셨다고. 김무열은 “어떤 사고를 당한지는 혼자 계셔서 모른다. 다치신 채로 발견이 됐다. 아버지께서 머리를 다 밀고 누워계셨다. 오랫동안 식물 인간으로 누워계시다가 아버지가 암으로 발견돼서 치료 수발을 했다. 제가 장남으로서 강해져야 된다는 생각을 많이 했었다”고 이야기했다.
이어 성균관대 연기학과에 입학했지만 김무열은 부담스러운 학비에 휴학을 택하고 일용직 노동, 휴대폰 공장, 각종 행사, 건물 경비 등 다양한 아르바이트를 했다고 일화를 덧붙였다.
김무열은 “아버지가 제가 연기를 하는 거에 대해서 선뜻 허락을 안 해주셨던 분이었기 때문에 항상 눈치를 볼 수 밖에 없었고, 그런 아버지께 불만이 컸다. 그러면서 가장 힘든 시기를 겪었던 것 같다”라며 “그때 아버지가 주변에 자랑을 하셨다고 나중에 듣는데 그게 너무 슬프더라. 그때도 여전히 집이 어려웠다. 산동네 판자촌에 살 때였는데, 드라마에 나오게 됐을 때 동네 사람들한테 자랑을 했다더라”라며 씁쓸한 미소를 지었다.
이후 아버지는 김무열이 서른 초반일 때 돌아가셨다고. 김무열은 “장례식 화장실에서 혼자 정신을 잃을 뻔 한 적 있다. 그때가 감당하기 어려운 일들이 닥쳤던 때”라며 “영화가 천만 관객분들께서 보실 정도로 성공하고, 작년엔 아들도 보게 돼서 가끔 그런 생각을 한다. 이제 아버지가 어디가서 제 자랑을 하시면 제가 그걸 받아들일 수 있는 여유가 생긴 것 같은데 곁에 안 계신다는 게, 또 좋은 일이 생길 때마다 생각이 나더라. 무의식적으로 ‘할아버지가 계셨으면 어땠겠다’고 하기도 한다”라며 그리움의 눈물을 쏟아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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