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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죽는 날까지 연기하겠다"…故 변희봉, 별이 된 봉준호의 페르소나[김현록의 사심록(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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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죽는 날까지 연기하겠다"…故 변희봉, 별이 된 봉준호의 페르소나[김현록의 사심록(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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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배우 변희봉. ⓒ게티이미지


[스포티비뉴스=김현록 기자]봉준호 감독의 페르소나. 배우 변희봉이 81세를 일기로 세상을 떠났습니다. 불과 수시간 전 배우 노영국의 비보가 전해진 차에 거푸 들려온 별세 소식은 황망함을 더합니다. 2017년 췌장암 진단을 받아 1년여 투병 끝에 완치 판정을 알렸던 고인은 이후 암이 재발해 투병을 이어온 것으로 전해졌습니다.

그가 암을 진단받기 직전인 그해 5월, 칸국제영화제에서 강렬한 기억이 떠오릅니다. 고인은 그해 넷플릭스 영화가 최초로 칸 경쟁부문에 입성해 말 그대로 난리가 났던 봉준호 감독의 '옥자'로 처음 칸의 레드카펫을 밟았습니다. 멋진 슈트에 나비넥타이를 맨 변희봉 선생님은 회색 머리칼을 흩날리며 레드카펫이 깔린 뤼미에르극장의 높은 계단을 직접 걸어올라 감격의 순간을 만끽했습니다. 봉준호 감독은 "'킹스맨' 콜린퍼스 같다고 말씀드렸다. 진심이다"며 감탄했습니다.

그분의 기쁨도 남달랐습니다. 그렇게 가까운 곳에서 마주한 것이 처음이었는데, 레드카펫 다음날 간담회에 나선 변희봉 배우는 어쩐 일인지 조금 긴장한 듯도 했습니다. "어제 공식 상영회 때는 별로 떨리지 않았는데 오늘은 왠지 가슴이 떨리고 불안하다"면서 "나는 그동안 인터뷰 기회가 별로 없었던 사람이라 할 말이 없다"면서 말문을 열었습니다. 한 20여명의 기자들이 현지에 와 있었을 겁니다.

"여러분도 아시다시피 칸영화제에 오는 것은 배우로서는 로망입니다. 정말 영광스러운 일이고. 배우로 오래 일했지만 칸에 온다는 생각은 꿈도 못 꿔봤고. 꼭 벼락맞은 것 같았습니다. 마치 70도 기운 고목나무에 꽃이 핀 기분입니다. 이 자리를 빌려 넷플릭스와 플랜 B 엔터테인먼트에 고맙다는 말도 전하고 싶습니다. 다시 말하지만 봉준호 감독에게 고맙다고 말하고 싶습니다."

겸손하기 이를 데 없는 노배우의 고백에 숙연해진 것도 잠시, 왜 '옥자'에 캐스팅된 것 같냐는 질문에 "돼지를 키워본 적 있어서"라는 위트 넘치는 답변으로 현장을 일순 폭소케 한 변희봉 선생님. 그가 연기에 대한 새로운 의지와 각오를 다진 순간에는 바삐 노트북 자판을 두드리던 취재진 사이에서도 박수와 와 하는 함성이 동시에 터졌습니다.

"내 머릿속에 가장 오래 남은 건, '난 다 저물었다고 생각했는데 미래의 문이 열리는 것 같다'는 기대감이 생겼습니다. 힘과 용기가 생겼달까. 두고 봅시다. 이 다음에 뭐를 보여줄지. 죽는 날까지 연기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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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배우 변희봉. ⓒ게티이미지


1965년 MBC 공채 성우로 데뷔한 고인은 오랜 시간 다양한 드라마와 영화를 오가며 활약해 왔습니다. 수많은 작품에 출연하면서도 변화무쌍한 음성과 눈으로 또렷한 인장을 채워넣었던 그가 새롭게 주목받은 것은 역시나 봉준호 감독과 만남을 통해서였습니다. 감독의 첫 장편 데뷔작인 '플란다스의 개'(2000)부터 '살인의 추억'(2002), '괴물'(2006), '옥자'(2017) 등에서 함께하며 독보적인 존재감을 드러냈습니다.

그날 그 간담회에 함께했던 봉준호 감독은 '플란다스의 개'에서 아파트 경비원 역할에 변 선생님을 캐스팅하고 싶어 당시 마포 가든 호텔에서 출연을 부탁드렸던 일화를 꺼내기도 했습니다. "'뭐 개를 잡아, 이게 영화감이야' 하시고, 제가 어떻게든 설득을 하려고. 저의 유일한 무기는 초등학교 1학년때부터 본 변선생님의 사극을 모두 알고 있었기 때문에 그런 것들을 죽 나열하면서 선생님의 마음을 녹이려 했다"고 회상했죠.

봉준호 감독은 선생님을 '광맥'에 비유했습니다. 함께 찍고 또 찍고 또 다음을 함께하는 건 "왜 반복적으로 여러번 되는가는 그만큼의 광맥 매장량, 파도 파도 나오는 뭔가가 있기 때문이다. 송강호 선배도, 변선생님도 그렇다. 이미 몇 편의 캐릭터를 나눠 했지만 여전히 궁금하기 때문"이라며 내내 눈에 하트를 띄웠습니다.

선생님과 봉준호 감독이 하는 또 다른 작품이 절로 기대됐지만, 결국 이루지 못한 채. 배우 변희봉은 영원히 하늘의 별이 되고 말았습니다. 하지만 암 발병 이후에도 드라마 '동네변호사 조들호2', '트랩', 영화 '양자물리학' 등에 출연하며 열정적으로 활동했고, 2020년에는 은관문화훈장을 수훈하기도 했습니다. 끝까지 연기하겠다는, 그 다짐을 끝까지 지키셨던 셈입니다.

선생님 안녕히 계세요. 그 멋진 모습, 영화 속 빛나는 모습들을 계속 기억하겠습니다. 삼가 고인의 명복을 빕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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