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들이 나오질 않길 바랐는데…" 120년 WS 역사상 이런 일 없었다, 프리먼 부자 '감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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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OSEN=이상학 기자] 프리먼 부자에겐 잊을 수 없는 날이었다. 월드시리즈 초유의 끝내기 만루 홈런 주인공이 된 프레디 프리먼(35·LA 다저스)과 그의 아버지 프레드에겐 영원히 기억될 하루였다.
프리먼은 26일(이하 한국시간) 미국 캘리포니아주 로스앤젤레스 다저스타디움에서 열린 2024 메이저리그 월드시리즈(WS·7전4선승제) 1차전에 3번 타자 1루수로 선발 출장, 연장 10회말 끝내기 만루 홈런을 터뜨리며 다저스의 6-3 역전승을 이끌었다.
올해로 역대 120번째 월드시리즈, 통산 696경기 만에 터진 첫 끝내기 만루 홈런이었다. 포스트시즌 전체로 보면 두 번째 기록. 팀이 뒤진 상황에서 나온 끝내기 홈런은 1988년 WS 1차전 다저스 커크 깁슨, 1993년 WS 6차전 토론토 블루제이스 조 카터에 이어 포스트시즌 역대 3번째였다.
10회초 1점을 내주며 2-3으로 뒤진 채 10회말에 들어선 다저스. 양키스 구원 제이크 커즌스 상대로 1사 후 개빈 럭스의 볼넷, 토미 에드먼의 2루 내야안타로 만든 1사 1,2루에서 오타니 쇼헤이가 좌익수 파울플라이로 물러났다. 양키스 좌익수 알렉스 버두고가 관중석으로 몸이 넘어가면서도 공을 놓치지 않고 잡아냈다. 그 사이 1~2루 주자가 한 베이스씩 진루하며 2사 2,3루가 됐다.
양키스 애런 분 감독은 손가락 4개를 펴며 무키 베츠와 승부하지 않았다. 좌완 투수 네스터 코르테스가 올라온 상황에서 우타자 베츠 대신 좌타자 프리먼과 승부를 택했다. 프리먼의 타격감도 좋지 않은 것도 감안했다. 시즌 막판 오른쪽 발목을 다친 프리먼은 통증을 참고 뛰느라 가을야구 내내 정상이 아니었다. 월드시리즈 전까지 포스트시즌 8경기 타율 2할1푼9리(32타수 7안타) 무홈런 1타점 OPS .461로 크게 부진했다.
베츠가 자동 고의4구로 1루에 걸아나가기 전, 다저스타디움 백네트 관중석에서 경기를 보던 프리먼의 아버지 프레드도 속으로 아들이 타석에 들어서지 않고 끝나길 바랐다. ‘디애슬레틱’에 따르면 프레드는 “베츠가 안타를 쳐서 아들이 타석에 들어서지 않길 바랐다. 최근 경기에 많이 나오지 않았고, 베츠의 타격이 잘 맞고 있었다”고 말했다. 타격감이 안 좋은 아들이 찬스를 놓쳐 패하면 그것만큼 아버지 입장에서 잔인한 게 없다.
하지만 양키스는 베츠를 1루로 보내며 프리먼과 승부를 택했다. 코르테스의 초구 시속 92.5마일(148.9km) 포심 패스트볼이 몸쪽 낮게 잘 들어왔지만 여기서 반전이 일어났다. 프리먼이 기다렸다는 듯 스윙을 돌렸고, 맞는 순간 큰 타구임을 직감하며 오른손으로 배트를 높게 들어올렸다. 경쾌한 타구음에 다저스타디움 전체가 들썩였다. 타구가 넘어간 것을 본 프리먼은 배트를 그대로 손에서 떨어뜨렸다. 6-3 끝내기 만루 홈런. 다저스타디움은 그야말로 열광의 도가니가 됐고, 프리먼은 크게 포효하며 그라운드를 돌았다.
아버지 프레드는 “아들이 배트를 휘두르자마자 좋은 스윙이라는 걸 알았다. 하지만 타구가 넘어갈지는 알 수 없었다. ‘이 정도면 충분히 넘어갈까?’라고 생각했는데 아들이 배트를 떨어뜨리는 것을 봤다. 그때 타구가 사라진 것을 알았다”고 말했다. 프리먼은 홈을 밟은 뒤 백네트 관중석에 있던 아버지에게 인사를 하며 포효했다.
경기 후 ‘폭스스포츠’ 방송 인터뷰에서 프리먼은 “아버지 앞에서 소리를 질렀다. 미안해요, 아버지”라며 웃은 뒤 “아버지는 내가 어렸을 때부터 매일 타격 연습을 시켰다. 지금은 나의 순간이 아니다. 아버지의 순간이다”고 공을 돌렸다.
이어진 공식 기자회견에서도 프리먼은 “아버지가 관중석에 있는 걸 알고 있었다. 내가 기억을 할 수 있을 때부터 아버지는 내게 타격 연습을 시켰다. 나의 스윙과 접근법은 전부 아버지 덕분이다. 그래서 지금 내가 있다”면서 “지금도 아버지는 오프시즌마다 내게 타격 연습을 시킨다. 아버지가 내게 연습시키지 않았더라면, 야구를 좋아하지 않았더라면 지금 난 이 자리에 없었을 것이다”고 진심을 전했다.
메이저리그 꾸준함의 대명사로 꼽히는 프리먼은 올해 크고 작은 일들로 고생했다. 7월말 막내 아들이 희귀병에 걸려 응급실에 입원했고, 가족들을 돌보느라 8경기를 결장했다. 다행히 아들은 거의 완쾌했지만 프리먼에게 부상 악재가 왔다. 8월 중순 오른손 중지에 실금이 갔고, 시즌 막판에는 오른쪽 발목이 심하게 부러졌다. 회복에 4~6주가 걸리는 부상이었지만 프리먼은 포스트시즌 출장을 강행했다. 타격 부진이 겹쳐 내셔널리그 챔피언십시리즈(NLCS) 마지막 3경기 중 2경기를 결장하는 등 우여곡절을 겪었다.
다행히 NLCS가 6차전에서 끝나 월드시리즈까지 회복 시간을 벌었고, 발목 상태가 호전되자 타격감도 돌아왔다. 이날 1차전에서 3루타에 이어 끝내기 만루 홈런으로 장타 두 방을 치며 부활을 알렸다. 다저스 팀 동료들도 감격했다. 테오스카 에르난데스는 “프리먼은 올해 많은 일을 겪었지만 항상 긍정적 자세로 팀 승리를 위해 최선을 다했다. 오늘 밤 프리먼다운 활약을 볼 수 있었다”고 말했다. 개빈 럭스는 “여기저기 뼈가 부러진 채로 경이로운 활약을 하고 있다”며 감탄했고, 키케 에르난데스는 “프리먼처럼 열심히 하는 슈퍼스타는 거의 없다”고 강조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