키 164cm로 기적 이룬 '여자배구 전설' 조혜정 전 감독 별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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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 배구 유일 올림픽 메달·최초 여성 감독... 지난해 12월부터 투병생활
'대한민국 최초'의 기록을 세웠던 조혜정 전 GS칼텍스 배구단 감독이 투병 끝에 별세했다. 향년 71세.
당시 올림픽 메달 소식만으로도 전 국민에게 큰 힘이 된 시기에 고인은 화려한 현역 시절을 보내면서 해외무대에 대한민국의 위상을 알려 준 인물이기도 하다. 특히, 1976년 캐나다 몬트리올 올림픽 여자배구 경기에서는 작은 키(164cm)에도 불구하고 엄청난 점프력을 바탕으로 많은 공격포인트를 획득해 당시 '날아다니는 작은 새(A Flying Little Bird)'로 불린 바 있다.
당시 여자배구 대표팀은 예상을 뒤엎고 B조 2위로 준결승에 진출했다. 체격과 실력의 열세를 극복한 결과였기에 이 정도 성과만으로도 대단한 일이었다. 결국 준결승전에서는 일본에 패하며 3-4위전을 치러야 했고, 조혜정 본인도 부상으로 경기를 치를 수 있을지 장담할 수 없었던 상황이었다.
그러나 헝가리와의 3-4위전에 나선 조혜정은 세트스코어 3-1 승리에 앞장서면서 대표팀 에이스다운 면모를 뽐냈다. 이때 대한민국이 얻은 동메달은 남녀 배구 통틀어 유일한 올림픽 메달이자, 한국 구기종목이 올림픽에서 따낸 첫 메달이기도 했다.
지난해 12월 투병 소식 전해져... 한국 배구의 큰 별이 지다
초등학교 5학년 때 배구에 입문한 조혜정 전 감독은 고등학교 3학년이던 1970년 처음으로 국가대표에 선발됐고, 이후 1970년 방콕 아시안게임, 1972년 뮌헨 올림픽, 1974년 테헤란 아시안게임, 1976년 몬트리올 올림픽에 출전했다.
올림픽 동메달에 앞서 방콕 아시안게임 은메달도 획득한 바 있다. 국제무대 활약 이후에는 국세청과 미도파 배구단에서 활약했고, 선수 막바지인 1979년에는 이탈리아에서 2년간 플레잉코치로 뛴 기록이 남아 있다. 현역 은퇴 이후에는 2010년 4월, GS칼텍스 배구단 지휘봉을 잡으면서 프로배구 사상 최초의 여성 감독 타이틀을 손에 넣기도 했다.
그는 1981년 은퇴 후 조창수 전 삼성 라이온즈 감독 대행과 결혼했다. 슬하에 얻은 딸 두 명(조윤희, 조윤지)은 모두 KLPGA 프로 출신으로 꽤 유명세를 탄 바 있다.
조 전 감독은 GS칼텍스 감독직에서 물러난 이후에도 한국 여자배구 발전을 위해 동분서주했다. 특히, 김연경 등 본인의 뒤를 이을 만 한 후배들의 등장과 활약에 누구보다 기뻐하기도 했다.
그러나 어느 순간 배구판에 모습을 드러내지 않아 궁금증을 일으키기도 했다. 훗날 주위에도 크게 알리지 않은 채 투병 생활을 했다는 사실이 밝혀졌다. 지난해 12월 췌장암 판정을 받아 항암치료를 받고 있었던 것이었다. 이후 가족들의 보살핌 속에 계속 치료를 받고 있었으나, 10월의 마지막 날을 앞두고 그대로 영면에 들어갔다는 소식이 전해졌다. 한국 배구계의 큰 별이 너무 일찍 져 버린 것이다.
조 전 감독은 분명 현재 V리그를 즐겨보는 팬들에게 익숙하지 않은 이름일지 모른다. 그러나 그는 대한민국의 경제 상황이 정말 좋지 않았을 때 배구로 국민들에게 큰 힘을 줬으며, 작은 키를 지닌 이도 본인의 노력과 또 다른 장점을 바탕으로 얼마든지 배구로 꿈을 이룰 수 있음을 보여준 영웅이기도 했다.
하늘로 날아간 작은 새, 조혜정 전 감독의 명복을 빈다.
당시 올림픽 메달 소식만으로도 전 국민에게 큰 힘이 된 시기에 고인은 화려한 현역 시절을 보내면서 해외무대에 대한민국의 위상을 알려 준 인물이기도 하다. 특히, 1976년 캐나다 몬트리올 올림픽 여자배구 경기에서는 작은 키(164cm)에도 불구하고 엄청난 점프력을 바탕으로 많은 공격포인트를 획득해 당시 '날아다니는 작은 새(A Flying Little Bird)'로 불린 바 있다.
당시 여자배구 대표팀은 예상을 뒤엎고 B조 2위로 준결승에 진출했다. 체격과 실력의 열세를 극복한 결과였기에 이 정도 성과만으로도 대단한 일이었다. 결국 준결승전에서는 일본에 패하며 3-4위전을 치러야 했고, 조혜정 본인도 부상으로 경기를 치를 수 있을지 장담할 수 없었던 상황이었다.
그러나 헝가리와의 3-4위전에 나선 조혜정은 세트스코어 3-1 승리에 앞장서면서 대표팀 에이스다운 면모를 뽐냈다. 이때 대한민국이 얻은 동메달은 남녀 배구 통틀어 유일한 올림픽 메달이자, 한국 구기종목이 올림픽에서 따낸 첫 메달이기도 했다.
지난해 12월 투병 소식 전해져... 한국 배구의 큰 별이 지다
초등학교 5학년 때 배구에 입문한 조혜정 전 감독은 고등학교 3학년이던 1970년 처음으로 국가대표에 선발됐고, 이후 1970년 방콕 아시안게임, 1972년 뮌헨 올림픽, 1974년 테헤란 아시안게임, 1976년 몬트리올 올림픽에 출전했다.
올림픽 동메달에 앞서 방콕 아시안게임 은메달도 획득한 바 있다. 국제무대 활약 이후에는 국세청과 미도파 배구단에서 활약했고, 선수 막바지인 1979년에는 이탈리아에서 2년간 플레잉코치로 뛴 기록이 남아 있다. 현역 은퇴 이후에는 2010년 4월, GS칼텍스 배구단 지휘봉을 잡으면서 프로배구 사상 최초의 여성 감독 타이틀을 손에 넣기도 했다.
그는 1981년 은퇴 후 조창수 전 삼성 라이온즈 감독 대행과 결혼했다. 슬하에 얻은 딸 두 명(조윤희, 조윤지)은 모두 KLPGA 프로 출신으로 꽤 유명세를 탄 바 있다.
조 전 감독은 GS칼텍스 감독직에서 물러난 이후에도 한국 여자배구 발전을 위해 동분서주했다. 특히, 김연경 등 본인의 뒤를 이을 만 한 후배들의 등장과 활약에 누구보다 기뻐하기도 했다.
그러나 어느 순간 배구판에 모습을 드러내지 않아 궁금증을 일으키기도 했다. 훗날 주위에도 크게 알리지 않은 채 투병 생활을 했다는 사실이 밝혀졌다. 지난해 12월 췌장암 판정을 받아 항암치료를 받고 있었던 것이었다. 이후 가족들의 보살핌 속에 계속 치료를 받고 있었으나, 10월의 마지막 날을 앞두고 그대로 영면에 들어갔다는 소식이 전해졌다. 한국 배구계의 큰 별이 너무 일찍 져 버린 것이다.
조 전 감독은 분명 현재 V리그를 즐겨보는 팬들에게 익숙하지 않은 이름일지 모른다. 그러나 그는 대한민국의 경제 상황이 정말 좋지 않았을 때 배구로 국민들에게 큰 힘을 줬으며, 작은 키를 지닌 이도 본인의 노력과 또 다른 장점을 바탕으로 얼마든지 배구로 꿈을 이룰 수 있음을 보여준 영웅이기도 했다.
하늘로 날아간 작은 새, 조혜정 전 감독의 명복을 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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