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내에게 남겨진 흔적 1
작성자 정보
- 새우깡 작성
- 작성일
컨텐츠 정보
- 22 조회
- 목록
본문
오전 외근을 마치고 회사로 들어가는 길에 편의점 앞에서 지역 정보지 몇 장을 버릇처럼 갖고 왔다.
사무실로 들어와 점심시간을 기다리며 자잘한 광고들이 몇 줄씩 나열된 정보지를 뒤적이는데, 특이해 보이는 광고가 눈에 띄었다.
전에는 무심코 지나쳤던 광고 문구였다.
만남 이벤트. 절대 비밀보장!!
‘만남 이벤트? 절대 비밀보장이라니, 무슨 말이지?’
간단하게 쓰인 몇 줄이 고작이었지만, 제 딴엔 자기네 의도를 가장 효과적으로 표현하기 위해 고심한 흔적이 역력해 보였다.
그런 부류의 문구 중 대부분은 유치하고 저속한 표현들 일색이긴 했지만, 그런 노력은 매우 효과적이었다.
무심코 지나치기엔 너무도 선정적이고 자극적이었다.
여성 무료!
상류층 회원 다수 확보!
강남 최고의 역사와 전통!
허전한 생활의 무료함을 멋지게 탈출!
겨울 찬 바람을 막아줄 따뜻한 사랑!
문구는 한정된 지면을 가득 메워서라도 어떻게든 회원을 확보하려는 듯 갖가지 선정적인 표현으로 가득했는데, 마지막 줄에서 남자는 무료가 아님을 짐작할 수 있었다.
. 여성회원 원장 직접 면접 상담, 절대 미모 보장!
매일같이 눈에 띄는 광고라 무시해오던 것이었다. 그런데 오늘따라 눈에 뭐가 씌었는지 큼지막하게 눈앞을 가로막았다.
게다가 광고의 내용을 어렴풋이 상상하면서 가슴까지 쿵쾅거리는 나 자신을 느끼며 웃음까지 흘러나왔다.
‘그냥 한번 전화나 해볼까?’
슬쩍 주위를 둘러보니 다들 조용히 자기 할 일에 매달려 있는 눈치였다.
나는 표나지 않게 정보지에 나열된 몇 개의 전화번호를 휴대폰에 입력한 다음 조용히 자리를 떴다. 그리고 회사 옥상에 있는 야외휴게소로 가 그중 가장 마음에 드는 광고 문구를 실은 사무실의 전화번호를 눌렀다.
“여보세요? 거기 이벤트 사무실이죠?”
“예, 맞습니다. 그런데, 어디세요?”
“예, 저. 광고 보고 전화했는데요..”
가슴이 두근거리고 떨려왔지만, 저쪽에서 들려오는 여자의 목소리와 억양은 그런 내 마음을 안다는 듯 차분하고 친절했다.
“그런데 무슨 일을 하는 분이시죠? . 아, 그냥 참고하려고 그래요.”
“그냥 직장에 다니는데.”
“아, 그러세요? 그럼 잠깐 나오실 수 있으세요? 어디세요, 지금?”
“예, 여긴 역삼동인데요.”
“어머, 그래요? 가깝네요, 여긴 강남역 근처예요. 오실 수 있죠?”
“예. 근데 꼭 가야 하나요? 그냥 전화로 이야기하면 안 되나요?”
설명을 듣지 않아도 대략 어떤 내용일지 짐작이 가는 바라, 내 호기심을 들키는 것 같아 창피하고 수치스럽기도 했다.
무엇보다도 직접적인 방문을 요구해 신분이 노출될까 봐 염려되었다. 순간적으로 남편의 얼굴이 떠올랐고, 자칫 직장 동료들과 주변 사람들 입에 이 사실이 오르내리게 된다면!
하지만 오랜 호기심과 알 수 없는 기대감이 그런 이성의 감각을 짓누르고 있음을 나는 느낄 수 있었다.
상대방은 그런 내 마음을 꿰뚫어 보기라도 하듯 더욱 적극적으로 나왔다.
“오셔서 저랑 잠깐 얘기를 나누시면 돼요. 어떤 분인지 제가 알아야 하기도 하지만, 그보다 중요한 건 어떤 스타일의 남성분을 원하시는지도 알아야 하지 않겠어요? 전화로는 다 알 수가 없는 거잖아요? 잠깐이면 돼요. 처음이시니까 좀 망설여지시겠지만 다른 분들도 잘 오시는 걸요, 뭐. 아무 걱정하지 마시고 한번 들르세요.”
“예, 그렇군요. 정확히 어딘데요, 위치가?”
“예, 여기는요..”
나는 곧 방문할 것처럼 전화를 끊고는, 걱정하지 말라는 그 여자의 말이 마음에 걸려 결국 찾아가지 못했다.
걱정을 해야 할 만큼 위험한 일을 굳이 할 필요가 있을까 하는 생각의 한 편으로 마음이 너무도 불안했기 때문이다.
그러나 끝내 호기심을 참지 못한 나는 이튿날 출근해 혹시나 하는 마음으로 다시 그 여자에게 전화를 걸었다.
“여보세요? . 어제 그분이시죠?”
“예, 그런데. 누구신지?”
“저. 어제 전화하고.”
“아, 어제 통화했던 그. 직장에 다닌다고 하신?”
“예..”
“호호, 뭘 그렇게 불안해하세요? 다들 잘 오시는데. 걱정하지 마시고 오세요. 비밀은 절대 보장되니까요, 호호호!”
“예, 그럼..”
통화를 끝내고 오전 일과가 어떻게 지나갔는지 몰랐다. 점심시간이 되자 나는 무엇에 홀리기라도 한 듯 그녀가 일러준 대로 택시를 타고 직장에서 5분 거리에 있는 그 사무실로 향했다.
그녀가 강조한 피부 마사지실 간판이 걸려 있는 입구에 도착해 한참 동안 망설였다.
건물 앞을 지나가는 사람들과 시선이 마주치면 마치 내가 큰 죄를 짓다가 들키기라도 한 것처럼 괜히 고개가 움츠러지고 가슴이 두근거렸다.
간신히 용기를 냈다. 그리고 후들거리는 다리로 스무 개 남짓한 계단을 간신히 올라갔다.
벽이 회색으로 칠해진 사무실 문을 밀치고 들어가자 다섯 평 남짓한 공간에 놓인 책상 두 개와 응접세트가 시야에 들어왔다.
실내는 제법 따뜻하고 아늑한 분위기로 꾸며져 있었다. 그런 분위기 탓인지 잔뜩 몸을 움츠러들게 했던 불안감은 어느덧 봄눈 녹듯 사라지고 있었다.
“아까 전화하셨던 경은 씨죠?”
“예, 안녕하세요?”
“예, 어서 오세요. 세상에! 이렇게 직접 뵈니 너무 매력적이시네요, 호호! . 전 김 실장이라고 해요.”
“예..”
“않으세요. 커피 한 잔 드릴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