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승 목표였는데 못 이뤄 아쉬움… 코치로 인생 2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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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승을 채우는 게 목표였는데 그걸 이루지 못하고 은퇴하게 돼 무척 아쉽다.”
최근 은퇴를 선언한 ‘달걀골퍼’ 김해림(35·삼천리)의 목소리에는 진한 아쉬움이 묻어 있었다.
지난 26일 경기도 용인시 88CC에서 열린 KLPGA투어 덕신EPC서경레이디스 클래식 3라운드를 마친 뒤 김해림을 만났다. 그는 이 대회 개막을 앞두고 은퇴를 공식 선언했다. 그리고 자신을 응원해준 팬들과의 공식 고별 무대에서 컷을 통과하는 것으로 유종의 미를 거뒀다.
김해림은 “투어에서 8차례 우승(일본 1승 포함)했다. 10승을 채우는 게 목표였는데 해내지 못했다”라며 “부상만 아니었더라면 선수 생활을 좀 더 오래 했을 텐데 뜻대로 되지 않아 정말 아쉽다”고 심경을 밝혔다.
김해림은 선수 생활 내내 고질적인 어깨 회전근 부상으로 고생했다. 은퇴의 직접적 원인은 부상 부위 재발로 인한 급격한 비거리 감소로 알려졌다.
회한만 남는 건 아니다. 그는 “많은 순간들이 주마등처럼 스쳐 지나간다. 어느 한순간 소중하지 않은 게 없다”면서 “또래 선수들에 비해 골프를 늦게 시작했음에도 이렇게 오랫동안 현역 생활을 한 내 자신이 대견스럽다. 그리고 그 자체가 보람이다”고 했다.
그는 2009년에 KLPGA투어에 데뷔, 지난 16년간 골프와 뜨거운 사랑에 빠졌다. 비록 자신의 341번째 출전 대회를 끝으로 투어를 떠나지만 그렇다고 골프와 영영 이별하는 건 아니다. 골프 지도자로서 인생 2막을 시작한다. 다시 출발 선상에 선 것이다.
김해림은 “염치불구하고 회사(삼천리)측에 골프단 코치를 맡아 후배들을 지도하고 싶다는 제안을 했다. 그랬더니 흔쾌히 허락을 해주셨다”면서 “제2의 인생을 살 수 있게 길을 열어준 이만득 회장님께 진심으로 감사드린다. 성적으로 보답하겠다”고 했다.
김해림은 또래 선수들에 비해 골프 입문이 늦었다. 스포츠를 좋아해 처음에는 농구 선수가 되려고 했다. 하지만 아버지의 권유로 중학교 3학년 때 골프채를 처음 잡았다. 이번 은퇴 경기 1라운드 때 아버지에게 캐디백을 맡긴 것도 영원한 골프 스승이자 후견이었던 아버지와 공식 무대 마지막을 장식하고 싶어서였다.
늦게 출발한 만큼 빛을 보기 시작한 것도 또래들에 비해 늦었다. 2007년에 프로에 데뷔한 이후 처음 3년간은 2부 투어에서 눈물 젖은 빵을 먹어야 했다. KLPGA투어 데뷔 첫 우승도 투어 데뷔 8년 차인 2016년 교촌 허니 레이디스 오픈에서 거뒀다.
이후 교촌 허니 레이디스 오픈은 김해림의 커리어에서 빼놓을 수 없는 대회가 됐다. 2018년 대회까지 3연패에 성공했기 때문이다. KLPGA투어에서 단일 대회 3연패는 구옥희, 박세리, 강수연에 이어 네 번째였다. 그 이후로는 박민지가 2022~2024년까지 셀트리온 퀸즈 마스터스에서 기록했다.
김해림을 설명하는데 또 하나 빼놓을 수 없는 건 도전정신과 실험정신이다. 그중에서도 닉네임 ‘달걀 골퍼’는 골프를 향한 부단한 노력을 알 수 있게 한다. 이 별명은 김해림은 생애 첫 우승을 거둔 뒤 “비거리를 늘리기 위해 하루에 달걀 30개씩을 먹었다”고 말해 얻게 됐다.
‘지금도 달걀 한 판을 먹느냐’는 질문에 김해림은 “이젠 끊었다”라고 손사래를 치며 “대신 하루에 1~2개 먹는 건 맛있더라. 몸매 관리도 해야 한다”고 웃었다.
비거리를 늘리기 위해 검도, 복싱, 배드민턴 등 골프와 메커니즘이 비슷한 운동을 골프와 접목한 것도 그의 실험정신의 단면을 엿볼 수 있는 대목이다. 이른바 ‘셀프 라운드’도 그의 실험정신을 보여주는 사례다. 자신의 국내 대회 7번째 우승이었던 2021년 맥콜 모나파크 오픈에서였다. 당시 그는 1라운드 때 캐디없이 손수 캐디백을 메고 경기를 했다. 전문 캐디가 경기력에 어떤 영향을 미치는지 알아보기 위해서였다.
물론 남은 이틀간은 하우스 캐디의 도움을 받았다. 그럼에도 그는 대회 정상 등극에 성공했다. 사실상 셀프 라운드 우승은 KLPGA투어 사상 최초였다. 당시 그는 “캐디가 없을 때 경기력에 영향이 있는지 알고 싶어서 캐디 없이 플레이했다”라며 “해외 투어에서 몇몇 선수들은 아예 혼자 플레이하는 것으로 알고 있다. 그래서 기사를 많이 찾아봤다. 정말 오랜 기간 생각도 많이 했다. 충동적이 아니라 계획적으로 준비했다는 걸 꼭 말하고 싶다”고 소신을 밝힌 바 있다.
2019년에 일본여자프로골프(JLPGA)투어로 진출한 것은 김해림의 대표적 ‘도전’ 사례다. 그는 2017년 JLPGA투어 사만사 타바사 레이디스에 초청 선수로 출전해 우승하면서 그 이듬해인 2018년에 JLPGA투어서 활동하다 2019년에 국내로 유턴했다.
‘기부’도 김해림을 설명하는데 빼놓을 수 없는 키워드다. 그는 2013년에 1억원 이상 기부자 모임인 아너스 소사이어티에 이름을 올렸다. KLPGA투어 선수로는 최초였다. 자신의 생애 첫 우승 상금도 전액(1억원)도 흔쾌히 기부했다. 팬클럽 해바라기도 기부에 동참했다. 뿐만 아니다. 매년 동계 비시즌에는 다양한 봉사활동으로 선행을 베풀고 있다.
김해림은 “처음엔 보육원 시설에 기부를 조금씩 했었는데 첫 우승할 때도 그렇고 보육원 시설 친구들이 현장에서 응원을 해주면서 점점 성적도 좋아졌고 기부도 더 많이 할 수 있게 됐다. 그게 계속 시너지 효과가 있었던 것 같다”며 “‘이게 너무 좋은 일이구나’라는 생각이 들어 기부를 계속했던 것 같다. 이제 연봉은 적어지겠지만 앞으로도 꾸준하게 조금씩이라도 기부를 할 생각이다”고 했다.
그러면서 그는 “저 이후로 KLPGA투어에서도 아너스 소사이어티에 가입한 선수들이 늘어나고 있다”라며 “투어 상금도 커진 만큼 기부를 통해 사회에서 인정받는 선수들이 많이 나왔으면 좋겠다”고 바랐다.
후배들을 향한 당부는 또 있다. 김해림은 “요즘 선수들은 워낙 테크닉적인 부분이나 자기 관리가 철저하게 잘 돼 있기 때문에 진심을 다해 골프에 대한 열정을 쏟는다면 롱런할 것”이라며 “투어를 뛰다 보면 분명 지치고 하기 싫을 때가 있을 것이다. 끈만 놓지 않으면 충분히 자기가 원하는 성과들은 다 이루지 않을까 싶다”고 덕담을 건넸다.
그는 팬클럽 해바라기 회원들을 비롯한 팬들을 향해 감사 인사를 전했다. 김해림은 “지금까지 그냥 아무 이유 없이 아낌없이 저를 사랑해주고 응원해주셔서 너무 감사드린다”며 “앞으로도 인생의 선배로서 조언도 많이 해주시고 응원도 해주시면 감사하겠다. 쭉 오래도록 연락하면서 서로의 안부를 물어가면서 지냈으면 좋겠다”고 말했다.